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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러: 박범진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저벅...

누군가 길을 걷고 있었다. 부스러진 자갈을 밟아

으적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발소리는 규칙적이었지만 힘이 없었다.

 

기계적으로 움직일 뿐인 다리는 바닥을 딛을 때마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휘청거렸다.

 

하지만 여기서 쉬거나 포기할 수는 없다. 당사자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잠시라도 걸음을 멈추는 순간, 약탈자의 소소한 유흥거리가 되거나

​오염된 공기에 더 노출될 뿐이라는 것을.

더이상 꽃을 피우지 않는 나무. 이제는 아무도 투숙하지 않는 호텔.

베이컨 냄새가 끊긴 음식점과 당연하다는 듯 곳곳에 퍼진 불길.

낯설지 않지만 익숙해질수 없는 풍경이었다.

그는 품에서 작은 기기 하나를 꺼낸다. 이윽고 어떤 버튼을 누르는 순간

요란한 소리가 사방에 퍼졌다. 일종의 경고음이었다.

 

​그는 방독면의 필터를 조금 더 세게 고정한 뒤, 품에서 무전기를 꺼냈다.

"대기 중 방사능 농도 변함 없음. 보호복과 방독면 없이는 여전히 생존 불가합니다."

 

덤덤한 어투였다. 무전기 너머로는 아무 말이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의 상사가 목소리를 쥐어짜내며 지령을 내렸다.

"수고했다. 필터 훼손도는 어느 정도지?"

"한 시간 정도 쓰면 끝날 것 같습니다."

"확인했다. 지하로 복귀하도록."

 

 

그는 무전을 끈 뒤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표정은 방독면을 써서 보이지 않았다.

​다소의 시간이 지난 뒤, 자갈 밟는 소리가 이어졌다. 목적지는 여기서 그렇게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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