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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러: 박범진

찰팍

건조한 우주복 위로 습기를 머금은 진흙 내음이 덧씌워졌다. 썩어가는 삭정이와 나뭇잎을 밟을 때마다 진득한 물컹함이

느껴졌다. 딱딱한 우주선의 내벽이나 무중력 안에서의 유영에 익숙한 몸은 기시감이 일었다.

 

그것은 청명하고도 푸르른 섬짓함이었다. 어둠 속을 기어가던 박쥐가 갑작스러운 빛에 놀라는 것처럼. 모든 생명체는 익숙하지 않은 것에 공포를 느끼기 마련이니.

 

얕은 개울은 맑은 소리를 내며 흐른다. 햇빛이 스며들지 않는 바위엔 진녹색 이끼가 들러붙어 있었다. 개중에는 열 사람이 팔을 벌려도 안을수 없을 정도로 굵은 나무도 종종 보였다.

 

땅 밖으로 드러난 뿌리가 도처에 널려 있어, 발이 걸려 우스꽝스럽게 넘어지는 것을 조심해야만 했다. 썩어 부러진 나무를 양분삼아, 그 위로 새로운 생명들이 생장하고 있었다.

 

시야를 방해하는 덩굴을 잡아당기면 우득거리는 소리만 나고 꺾이질 않았다. 높다랗게 자란 풀에 칼을 휘둘러도 깔끔하게 베이기는커녕 찢기거나 반쯤 뭉개지기만 했다.

 

질긴 식물을 베는 칼날만이 무뎌질 뿐 풍경은 조금도 변하질 않았다. 그것들은 질기고, 꾸역꾸역 살아남고, 생명 위에 생명을 억지로 욱여 자라나고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거목을 빙 둘러싼 채로 이름 모를 식물들이 흐드러진 것이 보였다. 넓다란 자주색 잎사귀를 줄기마다 피워낸 식물. 촉수처럼 긴 수술을 가지고 있는 들꽃. 나무를 기어올라가는 것도 모자라 몇몇 줄기가 축 늘어져있는 가시덩굴.

 

어떤 도감에도 실려있지 않은 것들이었다. 만일 저명한 식물학자가 탐사대원 내에 포함되어 있었다면,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모든 것을 기록하는데 하루를 소요했을 것이다.

"일단은 생명체가 있으니, 지구 측에 보고해."

​"보고 마쳤어? 그러면 우리는 이곳을 좀 더 탐사해보자.

​식물 말고 다른 동물이나, 지적생명체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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