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맷을 벗는 순간, 머리가 띵해지는 듯 하더니 코와 입에서 붉은 선혈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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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통증이 이는 듯 했지만 그마저도 둔해진다. 점점 시야가 부옇게 변한다. 오히려 몸은 가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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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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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서야 깨달았다. 이 숲 전체에 어떤 생명체도 없이 그저 식물만이 존재하는 이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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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이르는 미미한 포자와 가루가, 행성 전체를

완전히 감싸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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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림에 불청객들을 위한 볕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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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아주 조용하고 치밀하며 은근한 악육강식을 종용한다. 숲속에서 해는 빠르게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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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새벽은 아주 길고도 잔인할 것이다.

이곳은 정착할만한 곳이 되질 않는다. 그것을 너무나 늦게 깨달았지만, 무전기 역시 포자와 꽃가루로 인해 먹통이 되기 시작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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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오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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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외침은 허망하게 묻혔다. 이후 둔하고 묵직한 무언가가 땅에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