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러: 박범진
구
우
우
웅
이 순간은 정말 좋아하지 않았다.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오는 짧은 시간.
뛰어난 인간의 뇌는 그 사이에 아주 많은 것을 생각하고, 상상한다.
여기까지 오게 된 원인이 무엇이었더라.
기후 협약의 해체일수도 있고, 냉전의 재림일수도 있고,
계속되는 기상이변에 따른 내전과 난동 때문에 그런 걸지도 모른다.
하나의 원인만을 콕 짚어 재판에 올리기에는, 이 시대의 모두가 하나씩죄를 삼킨 채였다. 어디서부터 시작이었는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아니, 시작이 아니지. 이것은 끝을 향해 나아가는 배드엔딩이고,
결말을 인정할 수 없는 엑스트라들의 몸부림이다.
‘그렇게 인류는 멸망했다.’ 라는 문장이 결코 쓰이지 않게끔.
어떻게든 의미 없는 문장을 덧칠해 나아가는 퇴고의 과정은
마침표가 찍히기 전까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작디 작은 희망을
붙들기 위한 기약 없는 기다림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아..."
어느새 엘리베이터는 최하층에 도착한 상태였다.
나는 멀거니 선 채 닫히지 않은 문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이것 봐. 또 쓸데없는 생각이나 해버렸잖아. 쓴웃음이 배어나왔다.
문 밖으로 나선다. 보호복과 방독면을 벗자 싸늘한 공기가 스며들었다.
얼마 가지 않아, 눈앞에 거대한 지하공간이 시야에 들어왔다.
끊임없이 바깥과 소통을 시도하는 인원. 외부의 방사능 수치 혹은
독성 물질의 오염 정도를 파악하는 연구원.
모두가 필사적으로 살아남길 원했다. 아직 생존을 포기하지 않았다.
멀찌감치 보이는 우주비행선. 이미 우주에 나간 탐사대원들과 통신중인 수많은 정보요원들이 그것을 증명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들은 희망을 쏘아올리기 위해
새로운 탐사대원에게 우주복을 입히고 있었다.